이달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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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COURSE OF THE MONTH

이달의 특강

'충실함'에 대하여

http://www.facebook.com/seulki.jin.7/videos/878120035589555/


[가정에 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며 한 번 나눠볼 내용
특히 혼인을 앞두고 있거나, 가족이 있는 분들이라면^^...]

언젠가부터 ‘충실함’ ‘충직함’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리게 된 것 같습니다. ...
이른바 ‘고분고분한 모양새’가 그저 주어진 것에 순응만 하며 사는
무기력처럼 비춰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친구 하나라도 제대로 사귀 본 사람은 압니다.
누군가에게 굴종하는 ‘충’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을 다한다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결국 ‘충실함’ ‘신실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충실함에는 요란한 몸짓이나 말마디가 필요한 것도 아니죠.
그야말로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충실한 사람인가?...
옆에 있는 이의 눈을 한 번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손을 내밀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저는 충실함이라는 말을 할 때면,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 우리가 결혼할 그 때에는
그저 손을 맞잡는 것으로 족했었지!
왜냐하면 그때는 약속에 대한 충실함이 있었거든...’
더불어 이것은 사회에서도 그러 했었죠.
네! 가족 안에
남녀가 손을 맞잡는 그 안에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핵심근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약속에 대한 충실함이야말로 인류의 큰 업적입니다.
만약 우리가 저것의 대단함을 알아본다면, (실로) 우리는 겁낼 것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것의 저 대담무쌍함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사랑이나 우정 그리고 공동선
(다시 말해) 공동선의 행복과 우리들의 기대와 희망을 연결할 수 없을 겁니다.
만약 충실함이라는 영혼의 기적을 우리가 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는 분명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충실함의 그 힘과 설득력은 그 모두가 놀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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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함’에 대하여 -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일반알현 훈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 우리는 '중요한 약속'들에 대해 나누었더랬습니다.
곧, 부모들이 그들의 사랑 속에서 예정되어지고
(실제로) 잉태된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는 약속말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여기에 좀 더 덧붙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실제 모든 가정은 이 약속 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거죠.

자, 이 점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가정/가족의 정체성은 '약속'을 토대로 세워진 겁니다.
(이에) 가족/가정이란,
사랑의 약속 곧 남녀가 서로서로에게 행하는 충실함의 약속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자녀를 낳고 그들을 교육해야 하는 임무가 동반되죠.
아울러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이 약속의 실천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 중 좀 더 약한 이를 보호하고 돌보며,
그들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고유한 특성이 잘 실현하도록 돕는 거죠.
(실상) 혼인의 약속은
(가족) 모든 이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곧)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함께 사는 이들 뿐 아니라
공동선을 향해 너그럽고 열린 마음을 갖는 거죠.

(하여) 한 가정이 제 스스로들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마치 쥐가 난 것과 같은 겁니다.
네!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 살게 하는 이 '약속'이
그저 성가셔지고 쥐가 난 것과 같이 움츠려든 겁니다.
(그러므로) 제발 잊으시면 안 됩니다!
가정/가족의 정체성이란, 영원한 하나의 약속입니다.
(곧, 그 약속의 범위가)
커지고 확장되어 모든 가족 구성원과
(결국) 모든 인류에게까지도 적용되는 약속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요즘 시대는
가정적인 삶의 약속에 대한 충실함의 가치가 무척 하잘것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까닭은 우선 자신들의 만족을 추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모든 것을 비용과 효율의 관계로 여기는 거죠.
(마치) 그것이 양도 불가능한 자유의 원칙인 것마냥 말입니다.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선을 위한 노력과 서로를 관계의 삶으로 묶어주는 모든 것을
그저 오로지 법률의 강제에만 맡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누구도 그저 상품들이나 의무 때문에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죠.

(하여) 사랑과 우정은 참으로 제 힘과 선의를 다음과 같이 다해야만 하죠.
즉, 서로의 자유를 없애지 않으면서도 유대의 끈을 놓지 않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럼요) 사랑은 자유이니까요!
가족의 약속은 자유로움입니다. 그래서 고귀한 거죠.
따라서 자유 없는 우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자유 없는 사랑도 없고
자유 없이 결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충실함은 서로 반대되는 게 아니죠.
오히려 서로를 지탱해주는 요소입니다.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든 사회적인 관계에서든 말입니다.

실상 세계화라는 현대문명 속에서 초래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네, 많은 영역에서 이러저러한 약속들의 남발은 지켜지지 않고 있죠.
말한 바와 맡은 바 약속에 대한 불성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충실함이란 주어진 말에 대해 헌신의 자유 안에서 커져가는
그 스스로 지니는 약속에 대한 약속/전제입니다.
(그러니까) 충실함은 진정으로 함께 나눈 바람의 보증이자
함께 키워낸 바람으로서의 희망입니다.

이에 저는 충실함이라는 말을 할 때면,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 우리가 결혼할 그 때에는
그저 손을 맞잡는 것으로 족했었지!
왜냐하면 그때는 약속에 대한 충실함이 있었거든..."
더불어 이것은 사회에서도 그러 했었죠.
네! 가족 안에
남녀가 손을 맞잡는 그 안에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핵심근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약속에 대한 충실함이야말로 인류의 큰 업적입니다.
만약 우리가 저것의 대단함을 알아본다면, (실로) 우리는 겁낼 것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것의 저 대담무쌍함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사랑이나 우정 그리고 공동선
(다시 말해) 공동선의 행복과 우리들의 기대와 희망을 연결할 수 없을 겁니다.
만약 충실함이라는 영혼의 기적을 우리가 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는 분명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충실함의 그 힘과 설득력은 그 모두가 놀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어진 말에 대해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과 약속에 대한 충실함은
(결코) 그 누구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아울러) 힘으로 강제할 수도 없죠.
더불어 희생 없이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가족 간에 저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서도 저 사랑의 진리를 가르칠 곳이 없을 겁니다.
네! 그 어떤 법도 인간 존엄의 이 귀중한 유산과 고귀함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사랑으로써 세대 간에 인간적 유대를
우리 몸에 새기지 않는다면, 실천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분명 오늘날은) 사랑의 충실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네! 사랑의 충실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되살려야죠!
(하여) 우리는 매일의 기적으로써
그러니까 그 어떤 다른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공동체에서 그 근본토대로서의 가정을 꾸리며 사는
수많은 이들이 이루어 내는 매일의 기적으로써
(온갖 사회의 불성실의) 교활함을 없앨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양육과 사랑의 약속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원칙이
하느님의 피조물 안에 마치 영원한 축복으로서
세상에 맡겨진 것과 같이 새겨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여, 성 바오로는 가족의 유대 안에서
신비하게도 결정적인 진리가 드러난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거죠.
곧, 그 안에는 주님과 교회의 유대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그 자신이
여기 가정을 보호함으로써 하나의 축복을 발견하고,
저러한 임무를 통해 언제나 배워나감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가정을 가르치고 이끌어나가기 전에 말이죠.
(따라서) 약속에 대한 우리의 충실함은
비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임무이지만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인류 가정에 대한 사랑은
교회 사명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이 약속을 완성하기 바라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울러 이번 시노드의 참석 위원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주님, 그들의 임무를 축복하시고
저희가 당신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라는 믿음 안에서
생생한 충실함을 지니게 하소서.
네, 주님 당신만이 제일 첫째이십니다.
더불어 주님께서는 당신 약속들에 대해 충실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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