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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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COURSE OF THE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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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외로움, 아담과 이브의 사랑 - 2015년 10월 4일 연중27주일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개막미사 강론 1부

https://www.facebook.com/seulki.jin.7/videos/869992256402333/


“오늘의 독서말씀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슬픔 속이나 제 홀로 살게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행복하게 자신의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완전하게 나누도록 창조하셨죠.
그렇습니다, 사람을
사랑의 놀라운 체험을 살도록...
다시 말해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만드신 겁니다.
자신의 사랑이 자녀들을 통해 결실을 맺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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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외로움, 아담과 이브의 사랑 - 2015년 10월 4일 연중27주일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개막미사 강론 1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주일 독서 말씀은
(마침 오늘부터) 교회가 마주하는 은총의 행사
곧, '가정'을 주제로 이 미사를 통해 개막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를 위해 일부러 선택된 듯이 보입니다.
(하여) 이번 회의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로)
고독/외로움의 문제
남녀 간의 사랑
(그리고) 가족/가정입니다.

(그럼 먼저) 외로움/고독에 대해 살펴볼까요.
아담은 (분명)
우리가 제1독서에서 읽은 바와 같이 낙원에 살았습니다.
네, 다른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다른 피조물들과 비겨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우위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에게 맞는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네 그래서 그는 외로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외로움/고독
(실상) 오늘날에도 이것은 여전히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합니다.
(이에) 저는 (지금) 그들의 가족들과 심지어 자녀들에게마저 버려진 노인들을 생각합니다.
(아울러) 홀아비와 과부들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많은 이들과
아무도 이해해주거나 들어주지 않아 혼자라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주민과 전쟁과 박해로부터 탈출하는 난민들
(더불어 오늘날의) 소비주의 문화와 사용 후 버려지는 폐기처분 문화의 희생자인 많은 젊은이들을 기억합니다.

(자,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라는 '역설'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고급주택과 고층건물은 볼 수 있지만
점점 가정과 가족의 온기는 덜해져 감을 봅니다.
네, 희망에 가득 찬 계획들은 많지만
정작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시간은 적은 겁니다.
(아울러) 오락을 위한 기기묘묘한 별별 수단들은 많지만
언제나 마음 깊숙이 공허감은 더해만 가죠.
많은 것을 즐기지만 정작 사랑하는 것은 적습니다.
자유는 많지만 정작 자주적이지는 않죠.
하여 점점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주의와 우울함, 파괴적인 폭력
그리고 괘락과 물신(物神)의
노예가 되어 마음을 닫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아담과 똑같은 체험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권한과 힘에는 그만큼
많은 외로움과 상처받기 쉬운 취약점들이 있는 거죠.
그러므로 가족이 그 해결책입니다.
사랑의 풍부하고 견고한 유대 속에서 심각함은 늘 줄어 드는 법이니까요.
건강하든 아프든, 부자이건 가난하건,
좋은 상황이든 나쁘든지 간에 말입니다.

(헌데)
영원하고 신실하며 진지하고 견고하고 풍요로운 사랑은
늘상 조롱받고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네, 좀 더 진보된 사회란,
출산율은 낮고
낙태율과 이혼율, 자살률 그리고 사회와 환경오염은 높은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리하여 다음 두 번째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계속해서 제1독서를 읽어보면
하느님의 마음이 아담의 외로움을 보고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네, 이 말씀은 당시 사람의 마음에 행복을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드러냅니다.
그와 비슷하고 알맞으며,
그를 사랑하고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심장(을 지닌 사람)이 없었던 거죠.
또한 (독서말씀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슬픔 속이나 제 홀로 살게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행복하게 자신의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완전하게 나누도록 창조하셨죠.
그렇습니다, 사람을
사랑의 놀라운 체험을 살도록
다시 말해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만드신 겁니다.
자신의 사랑이 자녀들을 통해 결실을 맺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마치 오늘 선포된 (화답송) 시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꿈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의 일치 속에서
그것이 이루어져 감을 보는 것 말입니다.
(이를테면) 함께하는 여정 속에서의 행복과 상호 간의 선사 속에서의 결실들 말입니다.

하여 이와 같은 구상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애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주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실상) 예수님은 저러한 수사학적인 질문 앞에서
그러니까 아마도 함정과 같이
전통이긴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혼문제를 통해
그를 따르던 군중들에게
그분을 의외로 나쁜 놈이게 만드려는 계략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이 예상치 않게도 솔직히 대답하시죠.
네, 모든 것을 원점으로
그러니까 태초의 창조의 때로 돌리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의 사랑을 축복하시고
(이러한) 그분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게 하셨으며,
그들을 불가해소성과 일치 속에서 결합시키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혼인생활의 의무가 그저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영원히 사랑해야 함을 뜻하는 거죠!
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태초의 질서와 그 근원을 다시 세우십니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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