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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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COURSE OF THE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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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강론 2018. 03. 18 - 축복과 은총으로서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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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은총으로서의 십자가


양승국 신부의 강론 중에서



언젠가 한 공동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때 받은 감동이 마음속에 생생합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정말이지 환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었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깊이 한번 묵상을 해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이고 활기차게 운영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거시적인 안목과 멋진 비전도 세웠겠지요. 세부적으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마련된 알찬 활동 계획도 마련했겠지요. 양질의 인적 자원도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식별 작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공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누군가의 구체적인 헌신과 희생이었습니다. 익명이지만 그 누군가의 공동체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열렬한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 완수, 그로 인한 결과는 찬란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화려한 꽃으로 만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찬란함과 화려함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님의 크신 자기 낮춤과 헌신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는데, 썩음 없이는 새로운 생명도 없는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다른 사이비 종교들이나 유사영성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는 달콤한 신앙을 우리 그리스도교는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현세에서의 지속적인 축복과 성공, 만수무강과 무병장수를 우리 그리스도교는 믿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교는 수난 중인 예수님의 얼굴과 그분의 십자가를 내세웁니다. 깊어가는 사순시기 우리 신앙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진리가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십자가를 없애주시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십자가 무게를 덜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평생에 걸친 십자가로 힘겨워하는 우리 앞에 더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눈에서 눈물을 없애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이 끔직한 병고를 단번에 낫게 해주시지 않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 옆에 현존하시며 우리와 함께 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혹독한 지상 현실을 단번에 뒤집어 주시지 않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이 암담한 현실 안에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교는 고통을 외면하고 멀리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대신에 고통을 끌어안고 수용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십자가 길을 걸으셨듯이 우리에게 지워지는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는 교회, 십자가를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결국 선물이요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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