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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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COURSE OF THE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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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강론 2019. 01. 17 - 행복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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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고통



홍금표 신부


연중 제6주일



새옹지마 (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변방 늙은이의 말이라는 뜻인데, 그 유래는 이러하다. 어느 날 변방에 사는 늙은이가 아끼던 말이 달아난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이를 재앙이라고 여겨 노인을 위로하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슬퍼할 것 없다. 혹시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얼마 지나지 않아 달아났던 말이 다른 많은 야생마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몰려와, 과연 그의 말이 맞았다고 늙은이를 축하한다.


그러나 변방의 늙은이는 다시기뻐 할 것 없다. 이 일이 혹시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대답한다. 그 후 말타기를 좋아하던 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낙상해 다리를 다친다. 이웃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러 찾아오자, 늙은이는 다시 같은 반응을 보인다.슬퍼할 것 없다. 화는 복으로 바뀐다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변방 오랑캐가 침입을 해 크게 전쟁이 터진다. 마을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갔지만,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였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말은 우리 삶에 화와 복이 공존함을 보여 주면서, 화와 복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것이 못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루가의 평지 설교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루가의 평지 설교는 마태오와는 달리 4가지 행복선언과 4가지 불행 선언이 나온다. 성서 주석가들은 이중 처음 3가지 행복선언만을 예수님께서 친히 이야기하신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평지설교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우는 사람들은 장차 다가올 하느님 나라가 있기에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의 관점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흔히 우리는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행복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행복과 예수님의 말씀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오늘 복음에서 불행하다라고 선언하는부요한 사람들과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 그리고웃고 지내는 사람들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사람들이 더 적합할 것 같은데,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이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역설적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 두 가지 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진정한 행복은 미래를 향한 개방성으로 판단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새옹지마란 말처럼 인간에게 복과 화라는 것은 삶의 순간 순간에서 교차되는 일이기에, 지금 현재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지금 현재의 상태를 가지고 행과 불행을 따짐은 큰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의 척도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주어질 미래의 어떤 상태가 행복의 척도다라는 것이 평지설교의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행복의 척도가 현재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태도는 분명해진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 절대 미래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완전한 개방성 이것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의 평지설교는 진정한 행복은 고통과 함께 고통 속에서 잉태됨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이 복되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인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 삶에서,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삶에 고통이 없다면 아마도 그 삶은 밤이 없이 낮만 계속되는 세상과 비슷할 것이요, 나와 이웃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머리가 아플 때 머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팔이 아플 때 팔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고통은 부정적인 그 무엇만이 아닌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인들의 생을 읽다 보면 그들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이들을 한결 성숙하고 진정한 행복의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아마도 예수님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하신 것도 바로 행복이 고통 속에서만 싹트는 이러한 모습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 그리고 우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분명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행복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은, 그 상태를 통해 가지는 미래를 향한 개방성 때문일 것이고, 고통의 체험을 통해 나와 이웃 그리고 인생과 세계를 성찰하고, 고통 안에서 싹트고 있는 참다운 행복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을 보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아픔 앞에 좀 더 의연한 자세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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