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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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DOCTRINES

사회교리

성령과 함께 하는 삶1

 

그리스도인, 모든 신앙인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영혼의 선익을 위해 부여해 주신 내적이고, 초자연적인 도움이나 선물이다. 은총에는 성화은총(신적 생활에 참여케 하여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는 은총, 상존은총)과, 조력은총(선한 행동을 하게끔 도와주는 은총, 도움의 은총, 우리 마음에 빛을 주어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고 우리의 의지에 힘을 주는 은총)이 있다.

은총의 삶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 가운데 사는 것이고, 세례받은 이들은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시 성인(聖人)이라 불려야 한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성인(聖人)은 살아있는 동안의 영웅적인 삶이 시성(諡聖)을 통해, 또는 교회의 교도권에 의해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성인(聖人)은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이며 교회는 성도(聖徒), 거룩한 이들의 무리이다.

 

1. 성인(聖人)들의 삶은 어떠한가? 공통적으로 성령의 뜻에 순응한 삶을 살았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나의 주보성인, 본당 주보성인, 성인들의 삶 알기)

 

2. 성인들은 삶으로 신앙을 증거 한다.

 

①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만족한다. ‘아무것도 너를’,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② 그리스도를 선택한다. 탐욕과 쾌락과 교만의 유혹을 끊어라. 연약한 신자라 하더라도 적어도 세속의 한 모퉁이에서나마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 무엇보다 하느님을 우선하라’(하느님을 중심에 두기)

③ 완전성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와 노력,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자제하고, 극기하며 최고의 목표에 접근하고자 한다. ‘성인들의 시대’ – 노틀담대성당의 고딕 건축양식은 바벨탑이 아닌, 신앙의 열망을 상징한다.

④ 기도하는 사람들 각자 다양한 카리스마를 지닌 모습(성인들의 별칭처럼)을 지녔지만, 한결같이 기도한다. 바쁜 가운데, 고통 가운데, 언제든지 기도한다.

⑤ 시대를 비추는 빛. 삶의 본보기가 되는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작렬하는 빛처럼 살아있는 복음으로 복음의 말씀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사람들. 그래서 성인들의 삶을 자주 접하면 신앙에 불을 집힌다.

⑥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단, 차이점은 자신의 인간적인 결점에 패배함이 없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있다. 지금의 부족함만을 보지 말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한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성인(聖人)인 우리는 늘 일상의 삶에서 작은 몸짓들로 서서히 성인(聖人)으로 자라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시고, 그 삶으로 초대하셨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그렇다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거나,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교나 사제나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다.” 신앙생활은 “일상생활과 거리를 두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할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직장인은 일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서, 젊은이는 친구들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며 거룩한 사람이 되는, 성덕에 다다르는 길이 있다.

 

3. 덕행의 삶을 살아 성인이 되자.

 

덕(德)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이다. 덕은 우리가 원죄(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인류 최초의 죄, 선을 행하지 않도록 부추기는 듯한 압박감)를 거스러 선한 일을 하게 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각적, 영적인 모든 능력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행동들 안에서 선을 추구하고 이를 선택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03항). 이 선을 향하는 습성과 힘은 우리가 자연적으로 완전하게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덕은 훈련하는 것이다(修德). 덕 있는 사람은 아무런 윤리적 결함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선(至善)하신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고 하느님이 가리키는 삶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덕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키는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 항상, 마침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덕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선행의 능력이다. 즉 반복되는 훈련으로 선행을 기꺼이 또 쉽게 하게 만든다. 그 예로 오랫동안의 훈련으로 판단력을 키우면 상황에 따라 쉽게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적인 덕은 흔히 4추덕이라고 불리우며, 지혜(현명), 의리(정의), 용기, 절제(인내)이다. 인간적인 덕들은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준다. 그러나 사추덕을 비롯한 다른 모든 인간적 덕들의 뿌리가 되는 것이 향주덕(向主德) 이다.

 

향주덕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의 기초가 되며 그 행위에 활력을 불어넣고 특징을 부여한다. 모든 윤리덕들을 알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향주덕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행동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신앙인 누구에게나 그의 영혼에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향주덕은 인간의 능력 안에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보증한다. 향주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813항).

향주덕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부어 주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협력과 훈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믿음의 덕은 세례 때 신앙 고백 한 번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수많은 불신의 상황들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다시 믿음을 되잡는 반복 속에서 우리 안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한편 죄 역시도 반복성을 갖고 있다. 죄가 반복됨으로써 죄는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강화되고, 심지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죄는 죄로 이끌며, 같은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악습을 낳는다. 그 결과 양심을 흐리게 하고 선과 악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이처럼 죄는 번식하고 더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죄가 아무리 강해도 하느님의 사랑을 방해할 수는 없다. 죄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 “덕을 추구하는 마음마저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죄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만큼 일생동안 끊임없이, 또 순간순간 회개의 여정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언제나 희망을 두고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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