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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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DOCTR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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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時間)이라고 다 같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時間)이라고 다 같은 시간이 아니다

 

 

송인찬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부터 우리 본당에 그야말로 ‘은총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간 모두가 사순시기, 영적광야를 충실히 걸어온 까닭도 있겠지만, 특별히 견진성사로부터 이어지는 성주간(聖週間)과 성삼일(聖三日), 그리고 성인 세례식까지 주님 부활을 앞두고 있는 우리 공동체에는 그야말로 밀도 짙은 은총이 계속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시간 앞에 서 있는 지금, 우리 각자의 마음은 과연 어떠한가? 많은 분들이 매년 반복되는 사순시기와 판공성사이기 때문에 담담한 마음일 수 있겠다. 또는 ‘지난 해도 그랬으니 올해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겠지’라며 어느 정도 체념할 수도 있다. 다행히 오늘 새롭게 견진성사를 받는 분들이나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는 분들은 신앙 여정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이분들을 신앙의 길로 불러주신 하느님과 그분의 도구가 되어 기도와 권면으로 이끌어주신 가족들과 본당 공동체, 그리고 뒤에서 소리없이 봉사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다.

1년 365일이 우리 앞에 늘 펼쳐져 있지만, 사실 시간(時間)이라고 다 같은 시간은 아니다.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차원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상대적’일 수 있다. 인생길을 걷다보면 아름다고 행복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천천히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을 때는 시간이 더디 가더니 나이를 먹으니까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어르신의 말씀 역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시간을 말하는데 있어 신앙인에게 ‘전례주년’(典禮週年)이라는 용어를 빼놓을 수 없다. 교회는 한 해 동안 고유한 주기를 정하여 하느님의 구원 역사,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탄생을 기념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한다. 전례주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가 그리스도인들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현재화(Here & Now) 되는 것이며, 우리는 미사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된다.

전례주년은 1년을 단위로 표시되며, 이 전례주기에 따라 시기(時期), 달(月), 날짜(日) 순으로 통합된다. 세상은 그레고리오력(오늘날 ‘달력’)에 의지하지만, 교회는 전례주년(교회력)을 따라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전례주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탄’을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전례주년 안에서 가장 밀도있게 은총이 주어지는 때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며, 이날을 준비하기 위해 성삼일과 성주간이 설정되어 있고, 대축일 이후 부활 팔일 축제로 이 은총은 계속 우리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한 주님의 은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아무쪼록 보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의 선물을 짐스럽게 대하고 있는 형제자매들까지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은총에 어둠을 박차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 빛으로 부활하신 주님께 나아가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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