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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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E OF SOULS

사목지표

2020년(가해) 사목지표

“신앙의 진리를 배우고, 친교의 공동체를 이룹시다!”

 

2019년의 사목지표는 “매일 성경을 읽으며, 본당 소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는 해”였습니다. 지금도 통독 중이지만 많은 교우들이 그간 멀어져 있던 말씀에 서서히 맛들이는 과정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48번의 구역 미사와 연령별 단체 혹은 봉사 단체 등을 통하여 그간 하느님과 공동체에 멀어졌던 교우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하느님께서 우리 본당에 큰일을 하고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는 모든 교우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기반 위에 올해는 두 개의 기둥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신앙의 진리’라는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친교의 공동체’라는 기둥입니다.

 

1. “신앙의 진리를 배우자”

오늘날 한국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교우들이 양 극단으로 나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쪽은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좀더 배우고 실천하려는 핵심 신자층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그간 삶의 질이 향상된 동시에 성경 공부나 각종 연수, 피정 등의 기회가 많이 제공된 덕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세례는 받았으되 전례 생활이나 공동체와의 끈이 느슨해지는 소위 ‘교우들의 주변화 현상’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는 자연이 ‘냉담 신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신자 재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시노드나 각종 지표들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자 재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그 핵심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신천지 같은 유사 종교가 성행하고 세속적인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하는 이 시대에 ‘성경 가까이 대하기’(성경 읽기)와 더불어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올바로 아는 것은 캄캄한 밤길에 등불을 비추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가톨릭 교회의 교리, 그 중에서도 제1편 ‘믿을 교리’를 다함께 배우시길 권고합니다. 예비 신자 교리나 주일 학교 교리 이후 제대로 된 교리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서 2000년 교회의 역사상 최초로 발간한 공식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중심으로 교리 교육이 실시될 것입니다. 시작은 성경 통독이 끝나고 주님 부활 대축일 이후가 될 것이고, 2020년 12월 중에는 ‘믿을 교리’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교육 방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 ‘교육 분과’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방향성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에 행하던 일방적인 교리 전달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교리서를 읽은 것을 바탕으로 정기적인 보충 강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또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교리를 각자의 삶과 연관시키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방향과 시도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교우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요령은 확정되는 대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2.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자”

‘교회’란 무엇일까요? 단언코 교회는 ‘친교(親交 koinonia)’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와 이루는 친교일까요?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교회는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입니다. 예수님도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의 긴밀한 친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4-5). 다음으로 교회는 ‘성도(聖徒 Sancti)들의 친교’입니다. ‘거룩한 사람들(聖徒)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친교’를 가리키죠.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지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친교, 또한 그 자녀들 상호 간의 친교! 이것이 교회인 우리의 근본 소명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세종 지역에 있는 ‘하느님께서 주인이신 교회’(세종 성 프란치스코 天主敎會)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교회의 근본 소명인 친교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친교의 첫 번째 차원인 ‘예수님과의 친교’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두 번째 차원인 ‘성도들의 친교’만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친교의 구체적인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1) ‘모임에 참여하고’, 2) ‘먼저 인사하고’(평화를 빌어주고), 3) ‘있는 그대로의 이웃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미사에, 소공동체에, 연령별 단체에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친교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공동체를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것이 내 삶의 변화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한두 번 만나 서로 알게 되면 ‘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트에서, 공원에서, 성당에서 만나면 용기를 냅시다. 사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댓가는 엄청납니다.

한 사람이 또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우리는 친교를 통해서 하나의 우주, 또 하나의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친교를 나누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 없습니다.

한편, 인사하고 대화하다 보면 상대의 ‘다름’을 느끼게 됩니다. ‘다름’은 잘못된 것도, 불행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축복’입니다. ‘나와 다른 너’를 경험할 때에 나는 더욱 ‘나’ 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이 친교의 자세입니다.

모든 친교에는 늘 ‘희생’과 ‘봉사’가 따릅니다. 만일 남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거나, 나는 상대방 때문에 전혀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내가 친교를 통하여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자꾸 얻어내고자 한다면 결코 참된 친교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친교의 속성에는 나눔과 공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당은 교우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소공동체와 각종 단체들이 많습니다. 각 구성원들이 단체 안에서 이루는 일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단체 안의 친교’보다 더 중요한 친교는 ‘단체와 단체 간의 친교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친교입니다. 그래서 작은 차원에서든 보다 큰 차원에서든 친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옆 구역 공동체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왜 그 공동체는 잘 되는가? 거기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나? 또 어떤 연령별 단체는 그 위 또는 아래의 연령별 단체와 어떻게 친교를 나누고 있는가? 이처럼 보다 큰 차원에서 성도들의 친교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 해는 ‘너와 나’를 넘어 ‘하나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를 다함께 만들어 봅시다. 때론 낯설고 외로운 이 세종시에서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또 우리의 신앙살이가 분명 더 아름답고 성숙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본당의 두 가지 사목 지표(‘신앙의 진리를 배움’, ‘공동체 안에서 이루는 친교’)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실천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배웁시다.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을 지키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며, 교회는 이 사명을 항구히 수행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항). 가톨릭 교회의 신앙은 그냥 내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 마음대로 믿는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이 신앙의 유산은 천지창조 때부터 준비되었고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에 의해 지켜지고 전해진 더없이 값진 유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물려받은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진리를 올바로 깨닫게 되고 그런 다음 깨달은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의 정통 신앙을 올바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천 년 가톨릭 교회의 역사상 처음으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모든 교리를 망라한 교리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올 해부터 시작될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경의 가르침, 교회 안에 살아있는 성전(聖傳)의 가르침, 정통 교도권의 가르침, 교부들과 성인 성녀들이 영적 유산으로 물려준 가르침들이 충실하고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교리서의 구성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경을 중심으로 한 ‘믿을 교리’, 성사를 비롯한 ‘거룩한 전례’, 십계명의 설명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끝으로 ‘그리스도인의 기도’ 순입니다. 이 네 부분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는 ‘신앙의 대상’이며(제1편), 이는 전례 행위로 기념되고 전해집니다(제2편). 이 신비는 하느님 자녀들의 행동은 비추고 지탱해 줍니다(제3편), 또한 이 신비는 ‘주님의 기도’로 탁월하게 표현되는 우리 기도의 토대이며, 우리의 청원과 찬양과 간구의 대상이 됩니다(제4편).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보화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성실히 읽음으로써 하느님의 신비와 놀라운 구원 계획 그리고 교회의 값진 보화를 향유하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먼저 ‘제1편 믿을 교리’를 교우 여러분과 함께 읽고자 합니다. 지난 해처럼 통독하듯이 매일 일정한 부분을 읽는 것은 아니고, 매주 주보를 통해 제시되는 정해진 분량을 각자 읽으시길 바랍니다(성당에서 미사 전에 읽지 않습니다). 다만 두 주에 한 번 정도 읽은 부분에 대한 해설 강의가 있을 예정이고, 교리에 더욱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월 1회 정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또 성심대학이나 주일 학교 등 특별한 목적의 단체를 위한 교육은 별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읽는 요령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부활 이후 교리가 시작되기 전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혹 예습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성물방에 교리서를 구비해 놓았으니 미리 구입하셔서 자유롭게 읽으셔도 됩니다.

무쪼록 올 해부터 시작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공부를 통해 우리 본당의 모든 교우들이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앙과 하느님을 뜨겁게 체험할 기회를 가지시길 당부드립니다. 다함께 진리를 향해 걸어가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2) 1년에 한 번 이상 피정 또는 신앙에 관한 연수나 교육에 참여합시다.

‘갈망하는 인간’이라는 용어가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대인들은 과거 세대에 비해 더 많은 욕구와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는 것도 단순히 배부르게 먹는 것을 넘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재료와 방법을 찾고, 입고 사는 방식 또한 보다 의미를 추구하지요. 과학 기술, 특히 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이러한 경향은 물질의 영역을 넘어 정신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활동들을 하거나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고 나아가 영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지요.

특히 영적인 갈망도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유사 종교를 포함하여 각 종교들은 여러 방식으로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한한 지상적 삶 역시 더욱 영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템플 스테이’라든가 ‘마음 수련’, ‘각종 영적 치유 프로그램’ 등 그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열두 사도들이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들을 말씀드렸을 때 그들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성공을 하여 기뻐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실패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저러해서 적잖이 피곤했겠지요.

오늘날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는 또 어떻습니까? 신앙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 지치고 인간관계들에 매이고 때론 일도 잘 풀리지 않아 힘겨울 때도 많습니다. 반대로 너무 일이 잘 되어 자기를 주체하지 못할 경우도 있지요.

어느 경우이든 우리 삶이 메마르고 정신 없을 때,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다가오면, 그때는 바로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나야 할 시기’입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에 와서 목마름을 채워가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때 더욱 영적인 쉼과 재충전이 필요하지요.

교회의 전통에는 바로 그러한 영적인 쉼, 영적 쇄신의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피세정념’(避世靜念) 곧 ‘피정’이 그것이죠. 피정은 가톨릭 신자들이 영성 생활을 위하여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하는 묵상과 성찰 기도 등을 말합니다. 주로 수도원, 피정의 집, 성지 등을 이용하지요.

올해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본당 교우들이 신앙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현존을 더욱 깊이 체험하기 위하여 피정이나 교육의 기회를 가져보시길 권고합니다. 각 구역이나 단체별로 또는 개인별로 다양하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실시되는 피정이나 교육을 찾기 위해서는 ‘교구 주보’나 ‘주교회의(CBCK) 홈페이지’ 혹은 ‘매일 미사’ 뒷면을 참조하십시오. 우리 본당에서도 각 단체별로 협의하여 우리 현실에 맞게 자체 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대전교구 안에서 실시되는 각종 피정이나 교육을 안내해 놓았습니다. 2020 그리고 이들 프로그램에 한하여 약간의 참가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사무실을 통해 신청하시면 심의하여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일정과 신청 방법 등은 추후 ‘주보’와 ‘게시판’을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무쪼록 올 한 해 교우들이 본당과 교회의 각종 영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욱 기쁘하시고 주님 안에서 활력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 

 

(3) 어려운 이웃이나 교회 단체를 구체적으로 후원합시다.

어느 날 돼지와 암소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돼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왜 날 더럽다고 무시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사람들에게 베이컨도 주고, 소시지도 주고 족발도 주는데 말이지….” 돼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암소가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니가 죽은 다음에 그렇게 주기 때문이지…”

잘 아시듯 사람들은 암소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암소는 ‘살아있을 때’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주요한 식재료로 삼고 있는 우유(牛乳)를 주기 때문이지요. 이밖에도 이전에는 운송 수단이 되어주거나 밭갈이 등 농업에 도움을 주었지요. 물론 돼지처럼 죽은 다음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먹고 가죽으로 사용하라고 다 내어줍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마태 6,20)는 말씀을 늘 우리는 다음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여유가 별로 없는데…’, ‘지금도 도와주고 있는데…’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미루다 보면 다음 기회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있을 수 없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필요 없는 부유한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그 정도와 횟수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내가 쌓은 것을 모두 다 하늘 나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얘기는 분명 달라질 수 있겠지요. 아마 저부터 더 많이 쌓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모두 다 놓고 가야 한다는 진리이죠. 어차피 놓고 갈 거 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얹어준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영적으로 차원에서 보면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그만큼’이 바로 내가 ‘소유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에게도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소유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키고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가운데 내가 그것들에게 소유 당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만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인의 길은 ‘가난, 순명, 정결’입니다. 이를 ‘복음삼덕’(福音三德)이라 하지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삶 안에서 내가 ‘가난’을 택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결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아님을 ‘부자 청년 이야기’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슬퍼하며 떠나갔던 그 젊은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내가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도록 합시다.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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