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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강론 2018. 09. 09 - 치유를 이루는 사랑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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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이루는 사랑의 소통




기경호 신부

연중 제23주일






오늘날 우리는 첨단 정보 수단들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도감청 장비들을 통한 사생활 침해와 인권 탄압 등도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장치들이 악용되는 경우는 차지하고라도 오늘날만큼 소통이 강조되는 시대도 없었다. 시대적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치유와 해방에 이를 수 있을까?

 

바빌론 유배라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제1독서는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불리는34-35장에 속한다. 35장은 사막이 기름진 땅으로 바뀌는 모습을 전해준다. 여기서 사막은 물리적 장소라기보다는 인간의 탐욕과 교만으로 파괴되고 하느님께서 회복시켜주시는 세상을 상징한다.


땅은 하느님께 신뢰를 두면 비옥한 땅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막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이사야는 선포한다. ‘하느님께서 오실 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고,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며,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4-6) 소경과 귀머거리는 구원의 시대에 제거될 온갖 장애를 뜻한다.


하느님의 오심으로, 하느님의 창조적 힘이 작용함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치유가 일어나게 되며 사막에서 냇물이 흐르는 세상이 펼쳐진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함께함을 통한 치유를 통해 성취하심으로써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다.

 

눈먼 이들의 눈뜸은 육체적, 물리적, 사회적, 영적인 소통이 가능해지는 창조적 변화와 구원의 다른 언어인 치유를 뜻한다. 예수께서는 이방인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소통을 가능케 하는 치유를 행하셨다.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자 자기 고장에서 떠나달라고 청했던(마르 5,17) 이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환대한다. 이제 이교인들도 인간의 고통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와 놀라운 치유를 일으키시는 그분을 알아보고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한다(7,32).

 

예수께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7,33-34)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창조적 순수함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신 다음 즉시 온전한 치유를 해주셨다.


이는 창조사업의 완성이요 인간의 처지에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선포였다. 이사야서와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과 우리 사회가 모두 귀먹고 말을 더듬는 영적인 귀머거리가 아닌지 돌아본다. 하느님의 진리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외면되고,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무감각하다면 어디서 하느님을 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인간을 배제시켜버린 저 광야에서 홀로 듣는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우리 안에 하느님이 오실 수 있도록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자. 치유가 필요한 이의 그 어떤 조건도 묻지 않고 치유해주시며 온전한 소통을 이루신 예수님의 소통방식을 본받아 우리 사이를 막는 온갖 걸림돌들을 거둬내자. 개인적 사회적으로 귀를 열고 혀가 풀리도록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듣자. 먼저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고 사랑으로 들어주며, 몸을 움직여 묶인 것을 풀어주고 닫힌 데를 열어주도록 하자.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독선과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경청을 시작하자. 나를 내놓고 죽기까지 자신에게서 떠나 이웃의 마음을 들어주는 사랑의 소통을 이루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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