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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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DOCTR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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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성사를 통한 신앙의 성숙

1.가톨릭 신자에게 성사는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

 

성사생활, 나아가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느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는 것이다. 이 친교 안에서 삶의 행복과 기쁨이 샘솟고 우리 삶에 필요한 은총도 얻을 수 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대(大) 데레사 성녀가 말하였듯이,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안에는 당연히 은총과 사랑의 나눔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분께 미약하고 작은 사랑을 드리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은총을 선물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조차 어리석게도 내 이익만을 찾다가는 주님과의 이 근원적인 친교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2. 견진성사의 의미와 필요성

 

하느님께서는 평생 당신 자녀들의 삶에 동반하시면서, 인생 여정의 중요한 시점마다 필요한 은혜를 내려주신다(세례-견진-성체; 혼인-성품; 고해-병자; 그 외의 준성사들). ‘성사’가 우리 삶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견진성사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은사를 더 강하게 받는 성사이다.

‘견진’(堅振)이란 말처럼 견진성사는 세례를 통해 받은 은혜를 더욱 굳건히 하고 증대시킨다. “견진성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욱더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시키며, 성령의 선물을 증대시키고,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도와준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03항.1316항).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따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이미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례 때 이미 오신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더욱 강하게 활동하시도록 견진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는 말씀처럼 우리는 육적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어느 한 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세례성사를 받았다고 금방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견진성사를 제정하시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가 ‘진정한 영적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영 안에서 도와주신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은 참으로 성숙한 사람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인생살이에서 큰 위험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삶을 헤쳐 나간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존귀함이 있다. 업적을 쌓아 올림으로써 자기 가치를 높일 필요가 없으며, 사람들의 기대에 영합함으로써 인기를 얻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성령께서 은사로써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3.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

 

1)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은사(恩賜)’란 누군가가 타인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거저 베푸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에게 거저 주시는 모든 좋은 것, 선하심, 선물 등을 뜻하며,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 인간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어떤 공로 없이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성령칠은(聖靈七恩)과 같이 ‘수여받은 개인의 완덕과 성화를 위해서’ 주어지는 은사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즉, 교회 건설과 성장을 위해 주어지는 은사로서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은사이다(성령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

 

2) 성령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성령특은 聖靈特恩)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보여 주십니다’(1코린12,7)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쇄신시키고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활동과 직무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이다. 바오로는 이를 ‘은총의 선물들’(The gifts of the Holy Spirit)라고 부른다. 성령의 활동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개개의 은사는 서로 다르지만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언제나 동일하다.

 

3)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의 목적과 성격

그렇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사를 통하여 신자들은 성장하고 교회의 각종 직무에 봉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입니다’(에페 4,12).

둘째는 ‘교회 일치’를 위한 목적이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4). 성령의 은사들은 같은 성령 안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은사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또한 은사들 중에서 계급도 없다. 목적이 같을 때 공동체의 일치가 가능하며, 성령 안에 서로 일치할 때 하느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게 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은사 자체가 소유자 자신의 영적 상태에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뛰어난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영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코린토 교회에서 엿볼 수 있다. 코린토 교회에는 은사들이 충만했지만, 그 공동체에는 오히려 혼란과 무질서와 당파싸움이 만연했다(1코린 1,10-17 참조). 따라서 완덕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은사들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덕(德)을 닦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4) 은사와 구별되는 ‘성령의 열매’란?

‘성령의 은사’(Charisma)들과 성령의 열매는 서로 다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를 언급하고 있다(갈라 5,22). ‘성령의 열매’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능력(은사)을 통하여 맺는 열매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은 이들이 행하는 덕스러운 행위 또는 활동을 말한다. 성령의 은사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지만, 성령의 열매는 그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적 성숙함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인 덕성이다. ‘성령의 은사’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성령의 열매’는 자신의 덕(德)을 통해서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그러므로 신앙인들 모두가 성령의 은사를 애써 구하되,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신앙인의 참다운 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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